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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 and roll"의 정의


"락앤롤(Rock and roll)"은 1940년대말 ~ 1950년대초에 탄생하여 블루스, 점프블루스, 재즈, 가스펠 등과 같은 흑인음악과 웨스턴스윙(Western swing), 컨트리뮤직(Country music)이 합쳐저서 발전된 음악 장르의 하나이다. 비록 1920년대 블루스 음악과 1930년대 컨트리뮤직에서 락앤롤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 50년대까지 락앤롤이란 명칭은 사용되지 않았다.


락앤롤이란 용어는 지금 적어도 두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첫번째는 1950년 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락앤롤 음악, 두번째는 이 후에 더 많은 것을 아우르며 발전된 락 음악. 이 글에서는 두가지 중 첫번째 의미의 락앤롤에 대하여 쓴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의 초기 락앤롤에서는 피아노나 색소폰이 리드악기(lead instrument)였으나, 1950년대 중반부터는 일반적으로 기타를 리드악기로 사용하였다. 비트는 기본적으로 블루스 리듬에 액센트가 있는 백비트(backbeat)를 사용하였다. 클래식한 락앤롤은 대부분 한두개의 일렉트릭 기타(1개는 리드, 나머지는 리듬)와 스트링 베이스 기타/일레트릭 베이스 기타, 드럼킷으로 연주된다. 락앤롤은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서 라이프스타일, 패션, 언어 등에 영향을 주었다. 락앤롤은 많은 하위 장르를 파생시켰는데, 락앤롤의 백비트 특징을 제외시키며 나타난 하위 장르가 바로 락 음악(rock music)이다.


"Rocking and Rolling"이란 구절은 원래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뜻이었다. 하지만 20세기초에는 "흑인교회 의식에서의 영적인 열정(spiritual fervor)"이나 섹스를 비유(sex analogy)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934년에 Boswell Sisters의 곡 "Rock and Roll"이 영화에서 쓰였고 1942년에는 빌보드 칼럼니스트가 Sister Rosetta Tharpe의 "Rock Me"와 같은 업비트 곡을 설명하기 위해 락앤롤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1951년에 클리브랜드의 DJ Alan Freed는 락앤롤이란 말을 대중들에게 알리며 락앤롤 스타일의 음악들을 그의 쇼에서 틀어 주었다.





기원


락앤롤의 기원은 평론가들에 의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었다.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부분은 미국 남부지방에서 아프리카와 유럽 음악의 요소들이 합쳐지는 과정 속에서 락앤롤이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예로 끌려온 세대와 그 자손들의 대도시(멤피스,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 클리브랜드, 버팔로)로의 이주는 흑인과 백인 거주민들을 그 어느때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살게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서로의 음악을 듣게 되고 그것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인기있는 라디오쇼, 레코드판(gramophone records)의 발달과 대중화, 그리고 재즈와 스윙과 같은 백인 뮤지션들이 강세를 보였던 흑인음악 스타일 등의 많은 요소들이 이런 문화적인 충돌(cultural collision)의 과정을 촉진시켰다.


락앤롤의 직접적인 뿌리는 리듬앤블루스와 1940-50년대의 컨트리음악에 있다. 특히 재즈, 블루스, 가스펠, 컨트리뮤직과 포크(folk)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의 재즈와 스윙은 도시적인 느낌의 댄스 밴드와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컨트리 스윙 안에 속하며, 당시의 흑인음악을 대부분의 백인들에게 소개한 최초의 음악이다. 1940년대에는 소리가 요란한 관악기(blaring horns)나 소리지는듯한 노래(shouted lyrics) 그리고 재즈 기반의 부기우기 리듬이 점점 증가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 후, 관객과 자원의 부족으로 빅밴드(large jazz band)는 수익이 줄어들었고 점점 기타, 베이스, 드럼만을 사용하는 작은 밴드로 구성이 바뀌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서부와 중서부에서는 점프블루스의 발전, 강조되는 비트, 소리지르는 창법과 같은 요소들이 훗날 흑인음악의 발전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Hail! Hail! Rock 'n' Roll" 에서 Keith Richards는 Chuck Berry가 점프블루스의 친숙한 투노트 리드라인(two-note lead line)을 전자기타로 바꾸고 락기타스러운 것으로 만들며 그의 락앤롤 브랜드를 발전시켰다고 언급했다. 비슷하게, country boogie와 Chicago electric blues도 락앤롤의 특색으로 볼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제공하였다. 


락앤롤은 상당한 기술적인 변화가 생기던 시기에 나타났다. 전자기타의 발달, 앰프(amplifier)와 마이크, 45RPM 레코드 등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레코드 산업에도 독립 레이블(Atlantic, Sun, Chess)과 락앤롤 음악을 다루는 라디오 방송국의 부흥과 같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후에 락앤롤이란 독립된 장르로 정의될 음악을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십대들이 즐겨듣는 유행이 나타난 것이다.


락앤롤의 발전은 점진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최초의 락앤롤 싱글이라고 확인되는 싱글 레코드는 없다. 최초의 락앤롤 레코드로 유력한 곡들로는 Goree Carter의 "Rock Awhile"(1949), Jimmy Prestonn의 "Rock the Joint"(1949) 그리고 Jackey Brenston의 "Rocket 88"(1951)이다. 미국 사회에 대한 넓고 문화적인 의미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Bill Haley의 "Rock Around the Clock"(1954)이 가장 중요한 기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초기 락앤롤 히트 스타로는 Chuck Berry, Bo Diddley, Fats Domino, Little Richard, Jerry Lee Lewis 그리고 Gene VIncent가 있다. Chuck Berry의 1955년 클래식 "Maybellene"은 그의 작은 valve amplifier로 만들어졌고 왜곡된 전자기타(distorted electric guitar) 소리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왜곡된 기타소리는 Guitar Slim, Willie Johnson 그리고 Pat Hare가 먼저 사용하였다. Willie Johnson와 Pat Hare은 1950년 초기에 왜곡된 파워코드(distorted power chord)를 사용하였다. Bo Diddley는 아프리카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아 새로운 비트와 독특한 전자기타 스타일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후대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초기 락앤롤


Rockabilly


"Rockability"는 흔히 1950년대 중반에 Elvis Presley, Carl Perkins, Jerry Lee Lewis와 같은 백인가수에 의해 불려지고 녹음된 락앤롤 음악을 일컸는다. Fats Domino나 Little Richard 같은 흑인 리듬앤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른 락앤롤 가수들은 백인들에게 인기있는 음악을 만들었으나 Rockability로 정의되진 않는다. 


1954년 7월, Elvis Presley는 "That's All Right"을 멤피스에서 녹음했고 이는 그 지역에서 큰 히트(regional hit)를 하였다. 1954년 4월 12일에는 Bill Haley & His Comets가 "Rock Around the Clock"을 녹음했다. 비록 첫 발매에는 마이너 히트를 기록했지만, 1년 뒤에 영화 "Blackboard Jungle"의 오프닝곡으로 쓰이면서 락앤롤 붐을 일으켰다. 이 곡은 락앤롤 역사에서 초대박 히트한 곡 중의 하나가 되었고 광분한 10대들은 Bill Haley & His Comets의 공연을 보기 위해 떼로 몰려 다니며 난동을 일으켰다. "Rock Around the Clock"은 Bill Haley & His Comets와 락앤롤 음악에게 하나의 돌파구가 되주었다. 이 전의 음악들이 기반을 다져놨다면 Rock Around the Clock은 락앤롤 음악을 전세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1956년, Johnny Cash의 "Folsom Prison Blues", Carl Perkins의 "Blue Suede Shoes" 그리고 Elvis Presley의 " Heartbreak Hotel"에 의해 Rockability의 시작이 강조되었고, 이는 몇 년 동안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락앤롤 음악의 한 스타일이 되었다. 이 후의 락앤롤 가수들, 특히 Buddy Holly와 같은 작곡가들은 Beatles와 같은 British Invasion 가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Doo wop


두왑(Doo wop)은 1950년대에 인기있었던 리듬앤블루스의 한 스타일이며 락앤롤과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두왑은 1930-40년대의 Ink Spots이나 Mills Brothers와 같은 흑인 보컬 그룹에 기원이 있다. 1940년대의 The Orioles, The Ravens, The Clovers와 같은 보컬들이 앞선 팀들의 뒤를 따르며, 점프블루스의 에너지와 전통적인 가스펠의 요소들을 이에 도입하였다. 1954년까지 락앤롤은 막 부상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여러 가수들이 R&B 차트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넘어가며 성공을 시작하였다. 특히 The Crows, The Penguins, The Eldorados, The Turbans와 같은 팀들은 경적을 울리는 브라스(honking brass)와 색소폰을 그들의 음악에 추가하며 큰 매이저 히트를 기록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많은 두왑 가수들의 폭발적인 레코드 발매에도 불구하고 차트에서 실패를 하거나 반짝스타(one-hit wonder)가 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The Platters의 1955년 곡 "The Great Pretender"와 The Coasters의 1958년 곡 "Yakety Yak"은 당시에 큰 성공을 이루며 예외적으로 성공한 가수로 기록되었다. 락앤롤의 시대가 10년째 되어갈 무렵, 백인 가수들, 특히 이태리 출신 미국인 가수들이 점점 증가하며 두왑을 점령해가고 있었다. 이들은 The Mystics, Dion and the Belmonts 그리고 여러 인종이 합쳐진 팀인 The Dell Vikings와 The Impalas를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두왑은 소울, Vocal Surf Music 그리고 비틀즈와 관계가 깊은 Mersey beat 많은 영향을 주었다.




Cover Versions


기 백인 락앤롤 히트곡들의 다수는 흑인 리듬앤블루스 또는 블루스 곡들을 커버하거나 부분적으로 다시 써서 내는 경우가 많았다. 1940년 후반부터 1950년대 초기까지 R&B 음악은 더 강한 비트와 더 거친(wild)스타일을 더해왔다. Fats Domino나 Johnny Otis 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음악의 템포를 빠르게 올리고 백비트 더 크게 키운 음악을 발매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DJ Freed와 다른 이들의 노력이 있기 전엔, 백인 소유의 라디오에선 흑인음악을 트는 것이 금기시 되었지만 뮤지션들과 프로듀서들은 락앤롤의 잠재력을 빠르게 알아보았다. 

Elvis Presley의 대부분의 초기 히트곡은 흑인 리듬앤블루스나 블루스를 커버한 것들이었다. 블루스곡을 컨트리뮤직 스타일로 편곡한 That's All Right"이나 "Baby Let's Play House", "Lawdy Miss Clawdy" 그리고 "Hound Dog" 과 같은 곡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커버곡은 당시 음악 산업에서 관례적인 것이었다. 미국 저작권법의 의무 라이센스(compulsory license)에 의해 커버는 쉽게 이뤄졌다. 최초로 크게 성공한 커버곡 중 하나는 Wynonie Harris가 커버한 Roy Brown의 1947년 점프블루스 히트곡 "Good Rocking Tonight"과 Louis Prima의 1950년 곡 "Oh Babe"이다. 그리고 Amos Milburn이 커버한 Hardrock Gunter의 1949년 곡 "Birmingham Bounce"도  크게 성공한 커버곡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는 백인 위주의 Pop시장이 흑인 R&B 곡들을 커버하였다는 점이다. 런 커버곡들의 친숙한 사운드가 백인들의 기호에 맞았을 수도 있고 어떤 편견의 요소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 어쨋건 백인 음반 시장을 대상으로 한 레이블들은 더 많은 배급망를 얻었고 더 많은 수익도 얻게 되었다. 유명한 사례로, Pat Boone이 Little Richard의  노래들을 클린버전(sanitized version)으로 녹음하고 발매하여 인기를 얻자, Little Richard의 원곡들도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커버곡이 단순하게 원곡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었다. 예로, Bill Haley의 커버곡 "Shake, Rattle and Roll"은 BIg Joe Turner의 유머러스하고 야한 가사의 노래를 생기 넘치는 10대 댄스곡으로 변신시킨 곡이었고, Georgia Gibbs는 Etta James의 곡 "Roll with Me, Henry"에서의 거칠고 빈정거리는 보컬을 발랄한 느낌의 보컬로 바꿔 불러서 원곡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이 더 듣기 쉽게 하였다. 그리고 Freddie Bell and the Bellboys의 녹음 버전을 락앤롤 버전으로 바꾼 Elvis Presley의 "Hound Dog"은 블루스 아티스트 Big Mama Thornton이 4년전에 녹음한 버전과는 매우 다른 곡으로 커버하여 부른 곡이기도 하다.





쇠퇴기


몇몇 비평가들은 락앤롤의 쇠퇴기를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기라고 말한다. 1959년까지, Buddy Holly의 죽음과 The Big Bopper, Ritchie Valens의 비행기 추락사고(1959), Elvis Presley의 군입대(1958), Little Richard의 은퇴(1957), Jerry Lee Lewis의 스캔들(1958), Chuck Berry의 체포(1959), Payola 사건의 발생(Alan Freed 등이 연루된 뇌물, 부패 사건, 1959) 등은 락앤롤 시대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차트가 러브 발라드로 점령당하기 시작하고 The Shirelles와 The Crystals와 같은 여성 그룹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락앤롤의 여성화(feminisation)"라 불리는 현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음악 평론가들은 이 시기에 나타난 멀티트랙 레코딩, 전자 사운드의 발전, 차트내의 인종차별 폐지 그리고 surf musicgarage rock 의 발달과 같은 락앤롤에서의 중요하고 혁신적인 발전들을 주목하기도 한다. 







원문: http://en.wikipedia.org/wiki/Rock_and_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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